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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 내소사 기행문 -2007년 10월-

새날의 2008. 1. 21. 15:14

 변산 내소사 기행문 -2007년 10월-

            여행일자: 2007년 10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배경음악>: 송학사 - 김태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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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 가봅시다! 이때 안 가보면 언제 가볼 거요!’

‘따라 가봅시다! 이때 안 가보면 언제 가볼 거요!’ 하고 아내를 깨우니 아침 7시다.

이 날(10월20일)은 내가 속한 모 단체의 가을 산행으로 내소사로 가기로 한 날이었다.

 

아내는 평소에 등산이라고는 하지 않는 ‘방콕 여사’인데, 내가 이번 산행에 함께 가보자고 채근했다. 아내는 산행에 가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있었기에 등산에 대한 준비는 전혀되어 있지 않았다.

 

나 혼자라도 가려고 출발 장소로 나가는데 아내가 배웅하러 따라왔다. 막상 출발 장소에 가보니 나이드신 할머님과 어린이들도 있었다. 이번 산행 코스를 이전에 다녀오셨다는 분께 아내의 신발이 등산화가 아닌데, 이번 산행 코스를 주파할 수 있을지 물어 보았다. 돌아온 대답은 우리 동네에 있는 뒷산(정상 높이 약200m) 정도이고 초보자도 갈 수 있는 정도로  3시간쯤 걸으면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날씨도 좋고, 할머님과 어린이들도 가니 같이 가보는 것이 어때?'하고 아내에게 함께 가기를 청하니 선선히 동행키로 한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아내가 이번 산행에 따라 나서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벌곡 휴게소에서 만난 돌로 만든 솟대

 

솟대를 두 번이나 만나다.

이번 산행을 주관한 곳은 등산 전문단체가 아니었는데 회장님 말씀으로는 이번 산행이 최대 인원으로 무려 35명이나 되는 대식구가 모였다고 했다. 이번 등산은 상기된 표정들의 아이들과 75세 되신 회원 어머님과 함께하는 여행이었다.

 

벌곡 휴게소 한편에는 돌로 만든 기러기 모양의 솟대 조형물이 있었다. 김제 평야를 지날 때는 추수가 끝난 평평한 땅끝으로 지평선이 보이는 듯하였다. 사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김제 평야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평평한 지평선 끝이 보이는 곳이지 않은가. 김제평야를 지나 이윽고 부안IC를 거쳐 변산반도에 들어와 바닷가로 나오니 나무를 깎아 만든 솟대가 바닷가 모래밭에 꽂혀 있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여행이 무사하기를 기원하는 듯 솟대를 두 번이나 만났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변산반도를 따라 잠시 바닷가를 이리저리 꾸불거리며 돌다가 산행의 출발지인 남여치에 도착했다. 변산반도 내소사 코스는 약 4년 전에도 이 단체에서 이 코스로 산행을 했었다 하며 당시 산행 시간은 세 시간 정도 걸렸었다고 했다. 나중에서야 안 일이지만, 이번 산행코스는 산행팀장도 초행이었다 하며, 주관 단체회장이 생각했던 이전에 갔던 평이한(?) 세 시간짜리 코스가 아니었다.

 

시작은 씩씩하였으나...

남여치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산행을 시작했다. 시작부터 가파르게 시작했지만 아직은 어느 누구도 힘든 표정은 아니었다. 산에 오르기 시작한 지 삼사십 분 쯤 되자 회원 한 분이 식은땀을 흘리시며 안색이 안 좋아지더니 결국 도로 하산하였다. 다른 회원님의 아들인 하모군은 체중 관계로 힘들어하면서 따라 올라왔지만, 75세 회원 어머님은 오히려 앞서 가셨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월명암에 오르니 탁트인 전망이 시원하였다. 암자 앞에 있던 감나무가 가을이 와 있음을 주홍색의 열매로 대변해 주었다. 여기에서 자연보호비로 내려가는 길은 미끄럽고 가팔라서 등산화를 제대로 신고 오지 않았던 아내로선 네 발로 기다시피 내려와야만 했다.

 

자연보호 비에서 점심을 마친 후, 팀을 분리하여 종주 팀과 버스 회수 팀으로 나누었다.

종주 팀은 직소폭포를 거쳐 내소사로 넘어가는 본격적인 종주 산행을 하기로 하였고,  등산에 무리가 있는 나이드신 어 머님들과 아이들은 버스로 회수해서 내소사로 바로가는 걸로 결정했다. 신발 준비가 제대로 안된 아내도 2차적인 본격 산행은 포기하였다.

 

.숨어있다 그 모습을 보여 주는 직소폭포

 

숨어있는 秘境(비경) 직소폭포와 신선계곡

자연보호 비에서 조금 올라가니 직소폭포가 숨어있다가 살며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종주산행을 하지 않겠다고 포기한 우리 팀원들이 이 아름다운 광경을 보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쉬웠다.

 

직소폭포 앞 계곡 한편에는 직소폭포 주위 풍광을 잘 감상할 수 있도록 난간을 둘러친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었다. 난간 끝에는 절벽이어서 위험하다는 경고가 붙어 있었지만 한 회원은 난간 끝에 올라서서 두 팔을 들어 올리는 ‘타이타닉 포즈’를 연출해 보였다.

.신선계곡에 비친 가을 그림자

 

직소폭포 정상 위로 계속 올라가니 신선계곡이 나왔다. 이 계곡 물에 비친 나뭇잎들과 푸른 하늘은 그대로 액자그림이 되었다. 신선계곡을 지나선 계단이 많이 나타났다.

 

고통 뒤엔 환희의 기쁨이

다리에 힘이 빠져 쉬었다 올라가기를 몇 차례 하니 재백이 고개가 나오고, 여기서 잠시 더 땀을 빼면서 올라가니 전망 좋은 335 바위가 나왔다. 335 바위에서 주위를 돌아보니 앞쪽(남쪽) 멀리 곰소만이 펼쳐져있고, 서쪽으로는 태양이 눈부시게 비치는 서쪽 바다 모습이 아련히 펼쳐졌다. 이곳에서 땀을 식히며 관음봉을 뒤로하고 기념 촬영을 하였다.

. 멀리 곰소만이 내려다 보인다

 

내소사로 내려가는 길은 岩稜(암릉)의 연속이었다. 한참을 내려가서 산에서 내려오던 뒤를 돌아보니 암릉들이 가을 단풍과 대비되어 회색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능선길을 거의 다 내려오니 저 아래 숲으로 둘러싸인 내소사가 눈에 들어왔다. 계곡 길로 내려빠져 나오니 내소사 입구 전나무 숲길로 끼어들게 되었다.

 

아늑하고 고즈넉한 내소사

.포근히 마음을 가라 앉혀 주는 내소사의 절마당 풍경

 

전나무 사이로 솔바람을 느끼다 보니, 어느 듯 단풍나무 길로 바뀌었고 단풍들은 내소사 안팎을 울긋불긋 물들이고 있었다. 내소사 대웅보전 뒤로 석양빛에 빛나는 관음산 봉우리가 부처님의 光背(광배)처럼 느껴졌다.

 

사천왕문을 들어서면 사천왕들이 있는데 어떤 사람은 약간 무서움을 느낄 수도 있는 무시무시(?)한 모습의 神將(신장) 모습들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오히려 괴물 귀신을 밟고 있는 모습으로 밝고 늠름한 모습이었다.

. 비파를 쥔 동방지국천왕(東方持國天王)과  검을 들고 있는 남방증장천왕(南方增長天王)
.용(龍)을 쥔 서방광목천왕(西方廣目天王)과  보탑(寶塔)을 쥔 북방다문천왕(北方多聞天王 )

 

사천왕문을 들어서니 아늑하고 고즈넉한 가을날 오후의 절 분위기가 동화 속의 풍경처럼 펼쳐졌다. 내소사 대부분의 건물들은 丹靑(단청)이 벗겨진 채로 있었지만, 그것이 도리어 오랜 역사의 흔적으로 생각되었다. 새색시 분칠한 듯 새 단청이었더라면 오히려 실망했을 것이었다.

.단아한 내소사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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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소사 대웅보전의 현판과 처마

 

내소사 절마당의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시대의 석탑에 비해 웅장하고 세련된 맛은 떨어지지만, 고려시대 석탑으로선 날렵한 물매나 처마 곡선으로 보아 고려 초기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 절의 분위기에 그 크기나 모습이 딱 어울렸다.

 

.대웅보전에는 본존불 아미타여래와 두 협시불이 모셔져 있다.

대웅보전은 아미타여래를 모셨는데  降魔觸地印(항마촉지인=마귀의 항복을 받으며 손을 땅에 대고 있는 부처님의  수인手印- 손 동작)을 갖추고 수수한 미소를 띠고 계셨다. 얼핏 수줍은 촌색시 모습이었지만 거룩하고 아름다운 모습 속에 위엄이 있었다. 이 본존불은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좌우에 협시불로 모셨는데, 좌측의 관음보살은 크기가 한국 최대라고 한다. 대웅보전의 꽃창살은 부처님에 대한 존경심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내소사 대웅보전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꽃창살

 

절 한편에는 단아한 모습의 說禪堂(설선당)이 있었는데 여기에선 茶(차)를 마실 수도 있었다. 이 설선당에는 다음과 같은 ‘마음을 닦는 글’이 걸려 있었다.

 

“是甚麽(시심마)” 

크고 커서 바깥이 없고 작고 작아 안이 없네

길고 길어 끝이 없고 짧고 짧아 가운데가 없네

모나서 뿔과 같고 둥글어 공과 같네

밝고 밝아 白日이 부러워하고 맑고 맑아 靑天도 시새우네

아~ 이것이 무엇인고

 

茶香(차향)과 함께 깨달음의 글을 가슴에 담았다.

내소사의 단풍나무 숲길과 전나무 숲길을 뒤로 하고 입구로 나오니, 기울어지는 햇살이 숲속 길에 화살처럼 꽂혔다.

 

.내소사 전나무 터널에 꽂힌 가을 햇살 

 

내소사 매표소 쪽 입구로 나오니, 상가 앞 가게의 간이 탁자에서 함께 산행한 동료 회원들이 전어구이와 찹쌀 동동주로 산행의 피로를 풀고 있었다. 술을 안 먹는 나는 찹쌀 동동주의 시큼한 맛이 유산 음료로 생각되어 이건 ‘유산균의 보고야!'라고 음주(?)의 핑계로 삶았다. 다른 회원들은 나의 이런 핑계에 술을 더 권하였지만, 시원한 맛 한 모금으로 만족하였다.                  

.내소사 진입로의 감나무에 가을이 달려 있다.

-끝-